클리브 X 이산아
클리브가 꽃을 건네주자 산아가 말했다.
“제 마음을 이용하려고 하는 건가요?”
장미만큼 붉게 물든 뺨도, 가늘게 떨리는 감사 인사도 없었다.
클리브는 익숙하게 실망했다. 장미를 받기는커녕 꽃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그의 얼굴만을 빤히 바라보는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설명해야 했다.
“난 클리브야.”
“클론이죠. 안타리우스 소속의.”
영겁의 시간이 지나고 모든 것이 변해도 그녀의 경계심만큼은 그대로일 것 같았다. 슬픈 것은 자신의 마음 또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이 내가 클리브라고 말하고 있어. 그리고 알다시피, 그는 너를 사랑해.”
산아는 여전히 클리브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삶의 들어온 것처럼 갑작스레 등을 돌려 떠났다. 그녀의 대답이었다.
모든 것을 그는 기억한다.
귀가 아프도록 울리는 경보음 사이로 분주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클리브는 눈을 떴다. 그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구석 벽에 기대어 거친 숨을 고르고 있었다.
“클리브!”
옆에는 산아가 있었다. 그녀는 클리브를 무척 걱정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아주었다. 안타리우스의 신도가 그녀를 찾는 소리에 매번 놀라면서도 시선을 돌리는 것은 잠시뿐, 클리브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에게 없었다. 그의 클론으로서의 수명이 시시각각 줄어들고 있었다.
“여기서 빠져나가야죠. 새 삶을 살아야죠.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조금만…”
“산.”
산아가 멈추었다. 클리브의 목소리는 진짜 클리브와 너무나도 똑같았다.
“넌 나를 믿지 못했어.”
산아는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제는 조금 믿어보려고 하니까 얼른 일어나서 뛰어야 해요. 난 사람을 업은 채로는 뛸 수 없어요!”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지금은 살아나가는 데에만 집중해요.”
“그렇게 된다면 넌 나와 함께 있어 줄 거야?”
산아의 모든 급한 행동이 멈췄다. 요란한 주변 소리가 하나둘 뚜렷하게 들렸다.
그녀는 주먹을 말아쥐고 클리브를 쳐다보았다.
“전 제가 사랑했던 사람의 복제품과는 함께 살 수 없어요.”
클리브는 그녀의 말에서 아픔을 느꼈다. 자신이 진짜 클리브라도 된 양, 그녀를 두고 혼자 죽어버린 데에 대한 죄책감이 꿈틀대었다.
“하지만 당신이 안타리우스에서 벗어나 다시 시작하게끔 응원해줄 수는 있어요. 어쨌든 당신이 제게 했던 모든 말은… 진심이잖아요.”
그녀는 변했다. 자신의 온 일생을 바쳐 데운 얼음에 물방울이 맺혔다. 클리브는 그녀를 보고 살짝 웃었다.
“순진하기는.”
클리브가 그녀를 밀쳤다. 그녀의 몸이 벽에 세게 부딪혔다. 벽을 이루는 하나의 철판의 나사가 헐거웠는지 어디론가 날아가고, 철판은 그대로 주저앉아 어두운 통로를 드러냈다.
산아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바보같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네 마음을 이용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이게 내게 주어진 임무였어. 너를 안타리우스로 끌어들이는 것.”
“뭐…”
“정말 네 하찮은 시간여행 능력만 믿고 날 구하러 올 줄은 몰랐어. 하지만 정말 그럴 필요는 없어.”
산아가 팔로 몸을 조금씩 뒤로 밀었다. 그녀의 얼굴은 더 이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바보의 것이 아니었다. 배신당한 그녀는 분노한 얼굴로 클리브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 분노야말로 클리브가 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녀는 정말 그를 업어서라도 데리고 나갈 것이다. 산아에게 용서받지 못할 거짓말을 했지만, 무엇보다 클리브는 그녀가 살아있길 바랐다. 그는 산아의 입에서 나올 사형 선고를 기다렸다. 그녀가 말을 고르는 몇 초의 시간은 한없이 길었다.
마침내 산아가 눈물을 흘렸다.
“역시 당신을 믿는 게 아니었어.”
산아는, 언제나 그랬듯, 갑작스레 몸을 돌려 떠났다. 클리브는 그녀를 쫓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수명이 다한 클론의 몸으로는 최선을 다해도 역부족이었다. 산아는 철판이 가렸던 비밀 통로 속으로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클리브는 철판을 들어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며 통로를 막았다. 들어오는 빛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산아가 알아채도 때는 늦었다. 그는 뒤를 돌았다. 수많은 신도들이 무기를 들고 클리브를 포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클론을 사살하라는 것이었다.
클리브는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San_is_Dream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