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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 홀든 X 넥서스 ( 단테 ) & 까미유 데샹

  단테는 잠시 음울한 시선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우중충, 어둡게 물들어있는 하늘을 바라보다 시선을 거둔 단테가 검지로 제 양 입꼬리를 올렸다. 아, 이 어찌 즐겁지 않을 수 있는지.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것 같은 하늘이 고인 물웅덩이에 비춰지는 것을 신경질적으로 짓밟아 더럽힌 단테가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언제쯤 끝이 날 거라고 생각해?”

“네가 원할 때. 지금이라도 도와줘?”

 

언제 다가왔는지 모를 이글이 등 뒤에서 그 목을 끌어안고 혼잣말을 내뱉던 단테의 목을 조금은 서늘한 손끝으로 쓸어내다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마른 웃음을 터트린 단테가 그 서늘한 손을 감싸듯 꾹 움켜쥐고 한껏 짓눌려 엉망이 된 목소리를 내뱉었다.

 

“가짜는 꺼져.”

 

싱겁긴. 한 마디를 남기곤 환각이 녹아내렸다. 그 기괴한 광경을 덤덤하게 바라보던 단테가 느릿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들어 서늘한 벽을 손으로 더듬었다. 하얗게 물든 벽을 바라보던 단테가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환희에 찬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다 금세 싸늘하게 굳어졌다.

 

“여긴 또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아직도 포기 못한 거야?”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지 않아, 까미유 데샹?”

“매정하긴. 그래도 이젠 유일하게 네 비밀을 아는 사람이잖아.”

 

그래, 그래서 아직까지도 저 남자를 죽이지 못하고 있지. 아닌가? 아니었나? 문득 치미는 의문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하하, 즐거운 웃음을 터트렸다. 알게 뭐야. 빌어먹을 까미유 데샹, 처음으로 내 가치를 알아보고 세공한 남자. 치미는 불쾌감에 작게 목을 울리며 신경질적으로 목 주변에 손톱을 세워가며 긁어댔다. 아, 단테. 조심해야지. 얼마나 더 망치고 싶어서 그래, 다시 관찰자로 돌아가.

단테는 그린 듯 웃음을 지었다. 웃고 있나? 웃고 있겠지. 분간이 가지 않더라도 일단은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 까미유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혀를 차며 손을 뻗어왔다. 아직 제대로 써먹지도 못한 물건에 흠이 가는 건 썩 유쾌하지 못하긴 해. 아, 내 사랑스러운 독수리는 언제쯤 날 죽이러 와줄까.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단테는 까미유의 손길을 묵묵히 참아냈다.

 

“예전에 그랬지. 그 능력이 여기서 나오는 거라면, 이걸 뜯어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면 여전히 그 능력이 존재할까, 아니면 사라질까.”

“내가 그걸 긍정해주길 원해? 사라지지 않도록?”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라면 확실히 다른 것으로 기능을 옮기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 단테는 덤덤하게 긍정했다. 이미 반쯤 망가진 물건 아닌가. 이런 것이 뭐가 쓸모 있다고 그분께서는 아직 나를 구원하지 아니하셨는가. 다시 한 걸음. 단테는 세상에서 물러섰다.

 

“이글 홀든이 널 찾고 있다고 하더군. 아마 얼마 안 걸릴 거야, 네가 원하는 결말까지는 말이야.”

“다행이야. 조금만 더 기다렸다간 지금보다 더 미쳐서 널 죽였을 것 같거든.”

 

단테는 부드러운 어조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험악한 말을 내뱉다가 천천히 자신의 얼굴을 감싸 쓸어내렸다. 사랑하는 나의 이글. 나의 이글 홀든. 부서지고 난 뒤에는 집착밖에 남지 않았다. 까미유는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단테를 바라보다 시선을 거두었다. 이 남자가 무엇을 위해 협력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분을 위해 원하는 만큼 도와줬던 것 같은데. 아직도 나한테 원하는 볼 일이 남았나?

단테가 의문을 갖자 까미유는 부드럽게 웃었다. 저 웃음을 흉내 내는 것은 많이 유용했지, 경계를 풀기 유용했었다. 짧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단테가 눈을 감았다.

 

“너만 사라지면 아무도 내 치부는 알지 못할 텐데.”

“이글 홀든도?”

“맞아, 몰랐으면 하거든. 그는 날 버리지 않을 거고, 버린다면 여태까지 쓴 글들을 모두 찢어 처음부터 시작할거야. 분명 가능하겠지.”

 

잠시 굳은 얼굴을 하던 까미유를 조용히 바라보던 단테가 어렸을 적에 들었던 자장가를 작게 흥얼거리며 담벼락 위로 가볍게 몸을 움직여 그 위에 주저앉았다. 움직임에 후드가 벗겨져 검은 머리카락이 허공에 수를 놓았다.

 

“괜찮아, 뜻대로만 된다면 이제 더는 널 끔찍하게 여기지 않을 테니까. 이 능력은 축복이야, 그 분께서 나를 선택하셨다는 증거지. 아, 이 얼마나… 얼마나… 역겨운지 몰라.”

 

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소년처럼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던 단테가 제 몸을 끌어안고,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는 순간 모든 감정을 지워냈다. 연극을 하는 것 같은 그 꼴을 보던 까미유가 작게 혀를 찼다.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잖아, 단테.”

“넌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없어. 날 버렸잖아.”

“정정하자면, 네가 날 떠났어. 그리고 지금 상황과 별 상관없는 이야기지.”

“아, 그랬지. 어쨌든 넌 넥서스라고 불러. 넥스라고 불러도 좋고.”

 

다시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단테는 발끝을 가볍게 까딱였다. 내려다보는 지금 상황이 좋았다. 언제나 약자로 있어야 했으니까. 언제나 겁쟁이처럼. 어렸을 적 펼쳐보던 성경에서는 말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다. 이건 고난이야. 구원을 위한 고난이지. 단테는 몸을 뒤로 기울이며 가는 숨을 내쉬었다.

 

“내가 죽을 땐, 이글에게 줄 거야. 다른 놈을 주더라도 일단 넌 안 줄 거니까 어서 꺼져.”

“정말 내가 가버리면 좋겠어? 외로워할 거면서. 그가 오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어.”

“…빌어먹을 까미유 데샹. 어디까지 날 비참하게 만들려고.”

 

당장이라도 잘근잘근 씹어버리고 싶다는 것처럼 거친 어조로 으르렁거린 단테가 까미유를 노려보았으나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할까? 단테는 그 얼굴을 노려보다 거부하듯 후드를 뒤집어쓰고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을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던 까미유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었다. 제법 작위적인 꼴이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그래봐야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널 쓰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했는지 알잖아. 도구면 도구답게 착하게 굴어야지.”

 

맞는 말이다. 단테라면 몰라도 넥서스는 그러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그분께서 주신 능력은 철저하게 도구의 삶을 부여했다. 그것을 알았기에, 떠나지 않았나. 순종하지 않았던가. 후드를 꾹 잡아 누른 채로 시선을 피하던 단테가 천천히 후드를 다시 뒤로 넘겼다. 비참한 그 속내를 내비치는 것처럼 손이 가늘게 떨렸으나 완전히 후드를 벗은 넥서스가 기계적으로 입꼬리를 올렸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까미유와 완전히 닮아있을 웃음을.

 

-

 

언제쯤 네가 나를 찾을지 모르겠다. 서서히 무너지는 정신을 느꼈다. 내뱉는 말들은 사막의 모래알처럼 건조하기 그지없었고, 너의 이름을 불러도 목소리는 어떤 무게도 갖지 못했다. 이글 홀든, 내가 돌아갈 수 있던 유일한 곳. 내가 멋대로 박차고 나온 나의 둥지임에도 네가 비상하여 내가 있는 곳까지 와줄 것이라 믿었다. 믿음은 실망을 낳기 마련임에도 나는 너에게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는 온전히 내가 있는 자리로 추락해줄 사람이기에. 네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날 죽여줄 것을 믿으니까.

 

“이글, 이글 홀든.”

 

더는 지긋지긋한 너의 환각도 찾아오지 않아. 너무 부정해서 이젠 네가 와도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 하하, 마른 웃음을 토해냈다. 네가 얼마나 날 비참하게 만드는지 네가 알아야 할 텐데. 너는 분명 만족스럽게 웃으며 날 안아줄 거야. 보물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내 뺨을 쓰다듬다, 내 숨을 거두어주겠지. 내 사랑, 부디 나를 죽여주오. 희극조의 말을 내뱉었다. 방관자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막지 못해 침범이 일었을 뿐이다.

단테는 건조하게 생각을 이어나갔다. 이렇게라도 해야 자신을 지킬 수 있었고, 무엇도 망치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언제나 제 3자로 자신을 보아야만 했다. 무너지려는 감정이 침범해 오더라도 동요하는 순간 모든 걸 망칠 것이 두려워 이리 산지 이미 스무 해 가까이 되지 않았나.

 

“당신의 정의로 길 잃은 우리의 지침서를 만들고,”

 

넥서스가 천천히 기도문을 읊었다. 의심하지 말고 믿음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이 가여운 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낮은 목소리로 짧게 중얼거렸다. 안타리우스여, 가진 것 없는 우리에게….

 

“드디어 찾았다.”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얼핏 그리워하던 목소리였던 것 같았다. 누구의 목소리였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아도, 무척이나 기다리던 목소리인 것 같아 천천히 뒤를 돌았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오며 후드가 뒤로 넘어갔다.

바람이 불며 시린 빛깔의 고운 실타래 같은 머리칼이 허공에 고운 자태를 흩뿌렸다. 길게 올려 묶은 머리칼, 여름의 가장 맑던 하늘을 담아낸 것처럼 시린 빛의 벽안이 시선 안에 자리했다. 눈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흉터, 흔들림 없이 곧게 뻗어오는 그 시선 앞에서 단테는 서서히 무너져 내렸다. 표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가 없었다.

절망이 스치고, 환희가 스쳤다. 얼핏 원망이 서린 것 같기도 했다. 왜 이리 늦었는지, 어째서 이제야 왔는지. 이제라도 나를 죽이기 위해 나를 찾아준 나의 유일한 구원자. 너는 그야말로 구원이다. 신이 나를 위해 내려준 단 하나뿐인 나의 구원.

 

“이글.”

 

목소리는 여전히 건조했다. 건조한 목소리는 알알이 굴러가는 알갱이가 느껴질 것처럼 버석하기만 했으나 표정만큼은 누구보다도 행복에 젖어있었다. 단테는 느릿하게 걸음을 내딛었다. 발도술로 뻗어 나온 검풍이 스치고 지나가며 후드를 가르고 벗겨냈다. 뺨에 생채기가 남고, 머리칼이 몇 가닥 끊어져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단테는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구원자를 향해 다가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그 우스운 환각들처럼 달콤하게 매달려오는 것이 아니라 피가 흐르는, 나라는 것을 확인하는 네가 참으로 사랑스럽다. 혹시 가짜일까 걱정이라도 한 것처럼, 많이 당한 모양이지. 옅은 웃음이 흘러나오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드디어 날 죽여주러 왔구나.”

 

너는 형용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 우리의 소설은 희극일까, 비극일까. 나는 감히 희극이라 말해보겠다. 너는 결국 어떤 형태로 날 보았던 날 죽여주었을 테니까. 우리는 모두가 비극이라 이야기할 이 무대를 희극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천천히 손을 뻗어 이글의 뺨을 감싸며 단테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입술을 겹쳤다. 이글은 조금도 저항하지 않았다. 금속이 떨어지며 바닥에 묵직한 소음을 냈다. 단단한 두 팔이 제 몸을 끌어안는 것에 단테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내뱉었다.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 목소리를, 이 품을, 이 향기를, 이 시선을, 이 체온을, 이 모든 것을 미치도록 그리워했다. 네가 나를 죽이러 올 오늘을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인내했는지 너는 알고 있을까. 그러니 너는 나에게 행복을 주어야해. 너는 나에게 구원을 내려주고, 나의 죄를 단죄하도록 해야만 한다. 내가 일으킨 수많은 비극을 너는 모르면서 나를 사하도록 해야만 한다. 내가 아끼고 아껴, 너만을 위해 남겨둔 것이니까. 누구에게도 감히 빼앗기지 않았다. 사도에게 빼앗기기엔 나에게는 현세에 강림한 나의 신이, 나의 구원자가 이미 있지 않나. 오직 나만을 위한, 나를 위해 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저 지옥으로 추락해줄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연인.

 

“왜 이리 늦었어.”

 

조금 투정부리듯 내뱉으며 양 손으로 느릿하게 따스한 뺨을 어루만지던 단테가 그 목을 끌어안고 어깨에 고개를 기댔다. 훨씬 풀어진 낯을 하고 느릿하게 투정을 가득 쏟아내면, 이글은 당연하다는 것처럼 그 머리를 쓸어주며 조용히 그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작게 호응해주다 뺨에 입을 맞췄다.

단테는 이글이 내비치는 그 서늘한 시선을 좋아했다. 분명히 그 안에 사랑이 녹아있음에도 어느 한구석에는 서늘한 살의가 담겨있는 그 시선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아,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모든 이야기를, 모든 고해성사를 끝마친 단테가 입을 다물자 이글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많이 기다렸어? 그런 물음으로 시작된 말을 이어나가며 이글이 천천히 머리를 쓸어주던 손을 내려 목덜미를 더듬었다. 어딘지 서늘한 기색을 품은 손가락이 목덜미를 덮은 머리칼을 치워내고 쓸어내듯 덮어감에 단테가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했다.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지고, 그 어느 순간보다도 환한 웃음을 지으며 뱀이 마지막 속삭임을, 독을 내뱉었다.

 

“사랑해.”

 

그 작은 속삭임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억지로 입꼬리를 당겨 웃은 이글이 천천히 목을 감싼 손에 힘을 주었다. 그 능력이라면 고통 없이 한순간에 목을 부러트릴 수 있음에도, 천천히 힘을 주어 목을 짓누르며 죽어나가는 표정을, 옅은 환희를 섞어 바라보았다. 단테는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팔다리를 늘어트린 채로, 저절로 일그러지는 표정을 억지로 웃는 얼굴로 바꾸어 시선을 떼지 않았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끝까지 그 얼굴을 담아가려는 것처럼.

 

“나도 사랑해.”

 

덤덤한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어느새 모든 감흥을 잃은 것처럼 식어버린 표정이 덤덤하게 사랑을 속삭이고, 살며시 내려앉아 눈도 감지 못한 그 눈을 입술로 내려 하나씩 감겨주고는 안아들어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처럼, 그 몸을 끌어안은 이글 홀든은 제 연인이 준비한 마지막 독을 기꺼이 삼켜냈다.

원하던 페이지대로, 이글은 제멋대로 움직이던 펜이 기록하는 단테의 마지막을 담아내고, 그 끝에 제 문장을 적어내리며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네가 원하던 대로 될 것이다. 너는 구원을 받았고, 나는 네가 원하던 대로 너를 구원해주었으니까.

이글은 천천히 후드를 눌러썼다. 깃펜이 제멋대로 움직이며 글씨를 적어갔다. 자신의 움직임까지도. 기울어진 천칭이 이글의 위치를 대신했다. 네 생각대로 되었으니 너는 만족해? 닿지 않을 물음을 삼켜내며 이글이 입매를 뒤틀었다. 네 목소리는 네 뜻대로 나에게 전해졌다. 오지 않던 나를 그리며 얼마나 같은 말을 중얼거렸을지 눈에 선하기도 했다. 하하, 마른 웃음과 함께 이글은 걸음을 옮겼다. 이 세상을 바꾸고 나면 나는 비로소 너를 볼 것이다. 네가 내게 남겨준 너의 목소리로 나를 죽일 테니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게 되겠네. 참으로 우습지 않나. 옅은 비참함이 심장을 적시는 것마저도 펜은 제멋대로 모든 것을 적어 내렸다. 수첩은 끝이 없었고, 너의 수첩은 날이 갈수록 두꺼워지고 있다. 이 긴 희극의 끝은 어디인가. 고행을 수행하는 것처럼 이글은 거듭 걸음을 옮겼다. 네가 원하던 대로. 너를 대신하여 그 모든 죄를 등에 업고 걸음을 옮긴다.

 

아, 가시관을 쓴 저 치를 보아라. 스스로 십자가를 등에 매달고 언덕을 오르는구나.

 

춤을 추던 펜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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