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뿐인 증오
탄야 & 메디나
왕관의 무게는 영광이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떳떳할 수 없는 왕관이, 그 형태와 무게까지 암담하다면 제왕에게도 차라리 도망치고픈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옥사나 야고비치, 아니. 탄야 랜킨은 안타리우스의 수장이었다. 그러나 안토니오 구마스라는 남자의 죽음을 값으로 올라간 자리였다. 충분한 능력이 있음에도 누구 하나 새 지도자를 곱게 여기지 않았다. 아군 속에서도 같은 편 하나 없는 위치. 숨 막히는 공포만이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권력이었다. 저러니 안토니오가 죽었을 때 눈 한번 깜짝하지 않은 인물이라고. 제 발로 침실을 나선 직후 낙인처럼 따라붙던 말은 새벽이 되어서야 사라졌다. 탄야 랜킨은 자신의 공간으로 들어오고 나서야 편한 숨을 내쉬었다. 당장 침대에 쓰러져 모든 것을 꿈속으로 데려가는 게 좋은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침실 안쪽의, 음음한 미스테리 소설 속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이동했다. 검은 홀 속에서 하나의 유리관만이 유일한 가구였다. 여인이 잠들어 있었다. 검푸른 머리카락, 무표정한 순간조차도 비스듬하게 올라간 눈썹, 그리고 커다란 전갈 문신. 다름 아닌 탄야 본인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클론을 대하는 것치고는 다른 태도였다. 그 대단한 탄야 랜킨은, 유리관에 천천히 기댔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마치 그리운 사람에게 어리광을 부리듯 유리관에 손과 뺨을 부비었다.
"메디나...“
안타리우스에서 이 탄야 랜킨과 '메디나'라는 사람을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둘뿐이었다. 탄야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옛 향수에 잠겼다.
기적을 보여주세요. 끝도 없이 몰려든 사람들은 굳건했다. 영광을 누릴 수 있다면 지옥까지 배를 밀어가겠다는 의지가 느껴질 정도였다. 탄야 랜킨은 그들이 귀찮고, 우스웠다. 그래서 사과 없이 밀치고 들어갔다. 온갖 홀과 사람들을 지나자 거만할 정도로 사치스러운 방이 나타났다. 드디어 그가 볼일이 있는 사람을 만났다. 방 하나일 뿐인데도 불필요하게 성문처럼 큰 문을 열어젖히니, 안토니오 구마스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기 드물게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노인의 곁에는 베일로 상체를 가린 여성이 앉아있었다. 탄야는 이 두 사람이 너저분한 관계일 거라 예상하며 노인을 대했다.
"안토니오."
"옥사나, 네게 선물이 있어."
"글쎄. 아직 여색에 취미는 없어서.“
껄껄거리는 웃음소리에 두 여자는 침묵했다. 한쪽은 화나 있었고, 얼굴을 가린 쪽은 조용했다. 탄야는 이 남자에게 정부라는 관계로 맺어져 있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본다면, 그의 일방적인 투기로 오해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탄야는 이 남자에게 지독하게 냉담했다. 단지 '여성'이 수뇌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신도가 줄어들 수도 있다는 속삭임에 정부라는 관계로 공인하는 걸 허락하고 말았다는, 정치적 공작이 있었다.
"보통 여자가 아니야. 너와 같은 다중능력자지."
그 말은 제법 놀라웠다. 탄야가 자리에 앉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다중능력 덕분이었다. 독을 이용한 복제 능력. 독은 누군가를 해치기에 손쉬웠다. 그러나 해치지 않고 무언가를 파괴하는 데에는, 아주 미량의 독을 이용한 화학 작용이 더 손쉬웠다. 그는 독을 먹여 잠재운 자의 유전자 코드를 훔칠 수 있었다. 독을 더 먹여 그 자를 조종할 수도, 아니면 그 독 섞인 체액을 마셔 자신과 그 사람을 일시적으로 뒤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복제품, 클론을 만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복제 능력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자신이 만든 클론들은 기본적으로 수명이 짧았고, 전투에는 쓰이더라도 복잡한 정신적 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연속적인 실패 이후로 안토니오의 접선이 잠시 뜸해졌다. 바로잡기 위해서는 더욱 실험해야 했다. 드디어 수명을 조금 더 늘린 클론에 대한 성과를 가져왔는데 새로운 다중능력자라. 탄야는 지금이라도 경쟁자를 제거하는 게 좋을지 고민했다.
"너처럼 여러 성과를 끌어올 능력은 아니지만, 마찬가지로 대단한 능력이지. 이 여자는 너의 능력을 보완해줄 거야. 나는 이 능력을... 교란이라 부르기로 했어."
그 여자는 상대의 외모를 따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수의 정신을 현혹하여 알고있는 것에 대한 불안감과 이로 인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고. 제법 신기했으나, 아직 중요성을 깨닫기 어려웠다. 우선 자신과 치열하게 경쟁할 위치는 못 된다는 걸 깨닫고 안도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것과 내가 무슨 상관이지.“
노인은 헛기침하고는 베일 속에서 팔처럼 보이는 것을 잡아끌었다. 언뜻 비추어지는 팔과 체격으로 봐서는, 다 자란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기대가 현저히 떨어졌다. 역시 이 남자는 젊음을 찾아도 노망이 드는 모양이지. 베일 속 인물 역시 싫어하는 눈치였다. 결국 손을 밀쳐내고는, 몸을 움직이더니 그 속에서 무언가를 써서 내밀었다.
약속과 말이 달라. 그리고 저 사람은 건방지고.
예상과는 다른 날 선 반응에 탄야는 표정을 굳혔다. 노인 역시 그랬으나, 곧 다른 생각이 난 듯 특유의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저 건방진 사람은 그리 낮은 위치는 아니야. 나 이후로 수장이 될 수도 있는 자지. 하지만, 이번에 연달아 실패했어. 메디나. 네 실력을 한 번 확인하고 싶어. 저 사람을 흉내내봐. 성공적으로 연기한다면 저 여자의 자리를 당장 네게 주도록 하지.“
베일의 인간은 그 말을 듣고 몸을 수그렸다. 마치 태아기로 돌아가겠다는 것처럼. 이마가 땅에 닿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곧 몸을 다시 들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훤칠한 체격이 베일 안에서 비쳤다. 노인이 잡아끌 때는 도무지 보이지 않던 팔이, 베일 밖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스스로 베일을 벗어던졌다.
"그 말을 당장 입증해봐."
그 자리에는 새로운 탄야 랜킨이 노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여러 해를 묵은 영험한 짐승이, 사람으로 둔갑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광경이었다.
새로운 탄야 랜킨, 메디나의 보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호기롭게 말하던 안토니오는 다소 치졸하게까지 갖가지 이유를 댔다. 우선 옥사나의 업적을 이루지 못했으니 옥사나가 아니다. 옥사나만큼의 현명함도 없으니 옥사나가 아니다. 무엇보다 옥사나와 말투가 전혀 다르다.
이 말에 폭발한 메디나는 그 자리에서 안토니오와 드잡이를 했다. 탄야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이, 결국에 분통을 터뜨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모습을 불쾌하게 느꼈다. 그래서 소리 없이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게 그들의 첫만남이었다. 이후의 만남은 일주일 뒤였다. 마구 잡아 뜯겼던 노인의 얼굴은 말끔해졌고, 메디나도 그때와는 다르게 차분한 모습이었다. 보라색 원피스(아마 탄야를 따라한 모양이었다.)차림에 어딘가 우울한 얼굴은 장례식을 연상케 했다. 탄야는 그 모습을 속으로 비웃고는, 안토니오에게 다가갔다.
"아직도 장난감을 버리지 못했군."
"쓸만 하니까. 아, 대신에 네게 물려줘야겠어. 지난번의 이야기가 덜 끝났거든. 누구들 때문인지."
노인은 메디나가 탄야의 사이드킥이 될 거라 말했다. 탄야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위험에 처할 일이 많을 텐데 그를 보좌하며 동시에 친밀하게 지낼 존재가 필요할 거라고.
"그냥 내 분신, 내 총알받이가 필요할 것 같았다고 말해.“
메디나의 표정이 눈에 띄게 일그러지는 걸 보며 탄야는 한숨을 쉬었다. 저토록 단순하고 어린아이 같은 존재가 자신의 분신이라니. 더욱 눈에 띄고, 더욱 일이 엉망으로 돌아갈 거라는 예측에 확신이 섰다. 그러나 무슨 말을 들었던 건지. 메디나는 특별한 볼멘소리 없이 탄야를 졸졸 따라다녔다. 대체로 베일을 쓴 채 동행하는 일이 많았다. 하루는, 한 강화인간이 탄야에게 조심스레 말을 청했다.
"누군가가 당신을 뒤쫓고 있다. 필요하다면 당신을 호위하겠다."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고, 무엇을 하고 있었지?"
"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외모. 키가 작은 금발의 여성이 당신을 계속 쫓았다. 이상한 점은, 당신의 행동을 하나하나 흉내내고 있었다.“
고개를 돌아보니, 멀리서 익숙한 베일을 급하게 두른 모습이 보였다.
이 이상한 관계도 조금씩 굳어져 가고 있었다. 다정한 말이 오간 적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적응되어 갔다. 탄야는 메디나가 자신을 상대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나다 여기지 않아 굳이 그에게 관심도, 적의도 드러내지 않았다. 메디나는 표면적인 탄야를 연구하는 데에 정신이 팔려 예민하게 굴지도 않았다. 그러나 특유의 성격적 합은, 글쎄. 가벼운 대화는 쉽게 아귀다툼으로 번지고는 했다. 메디나는 줄기차게 감정적으로 굴었다. 끈질기게 달라붙어 결국은 냉담한 탄야조차 이마에 핏줄이 설 정도로 흥분하게 만들었다. 메디나는 탄야를 정말 경쟁하는 악역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탄야의 휴식을 꼭 사탄의 회복기로 생각하고 쉴 틈 없이 사고를 치고 다녔다. 탄야는 실험실에 처박혀있던 순간보다도 피로했다. 그러나 힘 없이 방전되기에는 메디나가 매번 새로운 일을 벌여댔다. 멋대로 탄야의 권한을 남용하고, 사업적 파트너들을 만나고, 옥사나의 이름으로 이곳저곳을 다니고. 안토니오 노인은 탄야에게 이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정말 말뿐인 말이었다. 두 여자는 밤새 목소리를 높이다가도, 결국에는 기묘한 동거를 유지했다. 그게 임무였고 서로의 의무였으니까.
하루는 탄야의 몸이 안 좋아 중요한 간부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뒤늦게 깨어난 탄야는 자신의 신도 로브를 입은 채 물수건을 갈아주던 메디나와 마주쳤다.
"이게 무슨 짓이지."
"깨웠는데도 안 일어나던데. 이러다 죽는 건 아닐까 싶어 내가 대신 다녀왔어. 회의."
"굳이 불필요한.."
"네가 죽으면 곤란해. 특별히 친밀한 뜻은 아니야. 알지? 아직 널 완벽하게 따라하지 못했으니까 그 전까지만 네가 필요해.“
도자기 대야를 옮기던 메디나는, 그대로 탄야를 돌아보았다. 똑같은 얼굴임에도 그는 특유의 분명한 치기가 담겨있었다.
"참, 오늘 회의에서는 아무도 날 의심하지 않았어. 멀지 않은 거야.“
탄야는 그 사실에 기가 막혔다. 잔뜩 잠긴 목에서 웃음이 계속 새어 나왔다. 메디나의 연기력이 좋아진 게 아니라, 단지 상대방을 혼란케 하는 능력이 좋아졌다는 걸 본인은 죽어도 모를 터였다. 배를 잡은 채 몸을 뒤척이는 소리. 그리고 욕실에서 정신이 나간 거냐는 메디나의 물음이 들려왔다.
"미친 사람을 연기하는 건 죽어도 싫어.“
이제 둘은 동행하지 않고도 각자의 역할을 잘 해냈다. 귀찮고, 의례적이고, 위험할 수 있는 일정은 메디나가 소화했다. 자신이 이런 일에 익숙해지면, 손쉬운 업무에 나약해진 탄야 같은 건 순식간에 밀어낼 거라며 열심이었다. 메디나의 연기는 갈수록 볼만해졌다. 탄야는 그런 적이 없는데, 본인은 장엄하고 연극적인 말투를 쓰며 그의 흉내라고 말하고 다녔다. 사람들은 이제 자연스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래, 옥사나님은 간혹 저런 말투를 쓰셨지. 노인조차도 관심을 껐다. 모든 일에서 한 발 멀어진 그는 이제 뒷방 늙은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먹어야할 나이를 드디어 먹은 것처럼. 약해지고 있었다.
탄야는 두 개의 샌드위치를 샀다. 하나를 베일 밑으로 건네주니, 자신과 똑같은 색의 입술이 언뜻 드러났다. 대충 박아 넣어주니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안토니오가 드디어 늙은 모양이야."
"이제 그를 죽일 거야?"
"아니. 그건 그저 농담이었어. 세상은 네 생각보다도 복잡해."
"너도 내 생각보다 훨씬 길을 돌아서 가는 사람이구나. 난 너와는 달라. 힘이 생기면 기회가 찾아오는 족족히 놓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원하는 바를 쟁취할 거야.”
"아하. 그래서 잘도 내가 되셨군."
노인이 침묵하는 동안 두 여자는 웃었다. 한쪽은 늘 그랬듯 상대를 비웃었고, 얼굴을 가린 쪽은 여전히 분을 참지 못했다. 안타리우스에도 하지가 온 모양이었다. 빛이 길어 가장 컴컴한 곳조차 충분히 쬐어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인형실 끊기라는 사건이 발생했고, 노인은 죽었다. 안타리우스는 그들이 정리할 세상보다도 일찍 망가졌다. 탄야와 메디나는 정신없이 도망쳤다. 그들을 지켜줄 강화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명석한 재스퍼는 일찍이 처단당했다. 탄야와 메디나만이 특유의 능력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거기! 신원을 밝혀!"
능력자를 인식하는 기계에 불이 들어왔다. 기차역에서였다. 능력에 대한 차별과 공포가 뚜렷하던 시기였다. 같은 줄에 서있던 사람들은 그들을 노려보았다. 탄야는 비로소 진짜 역경이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능력자에게 일일이 코드가 덧붙여지고, 신원에 대해 철저해졌는데. 그렇다면 그들은 누구를 흉내내어야 하지? 어떤 능력자가 이 전쟁과 관련이 없는 인물이지?
그때 메디나가 스스로 베일을 벗었다. 그리고 탄야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 기계는 나 때문에 울렸어. 내가 능력자야. 옥사나 야고비치. 이 정도면 내 신원이 파악되는가?“
비능력자들 사이에도 파다하게 퍼져있던 이름. 기차역이 웅성거렸다. 탄야는 처음으로, 가장 격렬한 공포를 느꼈다. 저 애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거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능력을 써본 적은 없을 텐데. 역장이 그들에게 대기할 것을 명령했고, 그들은 정차된 기차의 뒷칸에서 조용히 앉아있었다.
"탄야. 걱정하지 마. 이 정도의 시간이면 네가 도망칠 수 있을 거야. 내 능력 알잖아? 수사가 끝나면, 다른 사람으로 변할 테니까. 난 너와 다르게 독을 먹이지 않아도 변할 수 있거든.“
하수. 그렇게 말하며 메디나는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연기에 서툴러 입술이 떨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탄야는 조용히 그 입술에 자신의 입을 갖다대었다. 당혹해하는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탄야는 그에 대한 다정함 대신에 독을 흘려넣었다.
"넌 너무 오랫동안 나를 따라했지. 그래서 이제 나 말고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기 쉽지 않을 거야. 내 말 잘 들어. 그 독을 이용하면, 다른 사람을... ..."
필요 없어! 탄야는 말을 멈췄다. 메디나는 울고 있었다. 무슨 감정인지 모를 눈에서, 눈물이 하염 없이 떨어졌다. 입가를 문지르더니 바닥에 침 섞인 독을 뱉었다. 난 네가 아니야. 이런 걸로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이제 이런 건 다 필요 없어. 메디나는 잡혀가는 순간까지도 그렇게 중얼거렸다. 혼란해진 틈을 타 탄야는 다음에 출발하는 기차를 탔다.
옥사나 야고비치가 잡혔다는 소식이 신문에 대서특필로 실렸다. 그러나 그 다음 날, 클론이었다는 소식이 또 특보로 전해졌다. 신문에는 옥사나의 능력이 적혀있었다. 다른 사람의 정신을 읽을 수도,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그리고 정신조차 완벽하게 구현된 자신의 클론을 생산해낼 수도 있는 능력.
탄야는 완벽하게 안전해지고, 1년이 더 지난 뒤에야 메디나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헬리오스가 사들인 여러 병원 중 가장 허름한 병원에 혼수상태로 발견되었다. 바싹 마른 입술은 기억 속의 것과 달라졌지만, 실낱같은 숨이 붙어있었다. 탄야는 그를 데려갔다. 그리고 수장만이 이용할 수 있는 실험실에 눕혀놨다. 힘이 들 때면 그 애를 보러갔다. 행복하지도, 성공하지도 않았던 시절. 지치지도 않고 나를 미워하던 사람. 이상하게 그 기억이 떠오르면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다시금 오롯한 증오를 받기를 꿈꿀 정도로.
@Julyandcit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