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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야 & 리리

강화 인간에게는 새로운 낙인이 필요해. 무엇으로? 이미 기존의 인간상을 뛰어넘는 능력이 그들의 낙인일 텐데. 독특한 의상과 강렬한 화장으로 빚어진 외모는 또 어떻고. 누가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겠어. 드러내놓고 다른 자들을. 아니. 그들에게는 역시 낙인이 필요해. 영겁을 숨겨도 지울 수 없는 낙인이.

안타리우스의 새로운 간부는 평범한 인물 같았다. 그는 기도문을 암송하지도, 구원받을 거라 강요하지도 않았다. 수줍은 양 눈을 내리깐 채, 말을 붙여오는 이에게만 겨우 얼굴을 보여주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복식조차 허름함을 간신히 벗어난 정도라 이런저런 뒷얘기가 돌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 간부께서는 관심 밖이라는 듯 순하고 소탈한 인상을 유지할 뿐이었다. 머지않아 그가 '세례'를 전담하게 될 거란 전령이 내려졌다. 막 완성된 강화인간들에게 그들의 정체성을 알리는 일이었다. 기존에는 번호나 지정된 이름을 붙여주는 방식이었다. 별것 아니더라도, 안타리우스의 근간이 되는 행사였기에 기존의 간부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 결정은 유지되었다.

드디어 그의 첫 활동이 시작되고, 피라미에 해당하는 나약한 것들만이 그에게 인사를 하러 왔다. 그는 환히 웃으며 자신의 첫 어린 양들에게 세례를 내려주겠다고 하였다.

 

채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이 간부는 재림회와 구원회에 버금갈 정도의 추종자를 모았다. 신성회 단장 리오넬라,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호명했다. 그가 내려주는 세례는 문신의 형태로, 추종자들은 모두 리오넬라가 직접 새긴 문신을 지니고 있었다.

신성회 단장은 세례를 시작하면 완전히 달라졌다. 온화하다 못해 무구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었다. 자신과 신자 단 한 명이 남으면, 그는 한 뼘을 훌쩍 넘는 바늘을 꺼내 들었다. 넌 이제 숭고한 의식의 대상이 될 것이다. 마치 그렇게 얘기하는 듯한 눈빛에 제물은 결국 몸을 내어주었다. 그는 도안도 없이 곧바로 바늘을 찔러넣었다.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바늘을 쑤셔 박고 꺼내는 각도. 물고기의 비늘처럼 촘촘하게 새긴 흔적은 끔찍한 고통과 함께 예술이 됐다. 의미 불명의 문양이더라도, 마치 우주의 한 조각을 훔쳐 박은 것처럼 기이하고 형형하게 빛났다. 이 모든 걸 겪은 자의 피와 땀을 직접 닦아내준 그는 나지막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신은 소원이나 규율을 잊지 않으려는, 원시 시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온 방식이지. 소속을 나타내는 의미도 컸어. 제사장과 그의 추종자들이 새긴 경우가 많아, 혹여 그들의 시신을 건지게 되면 신분을 밝히기도 쉬웠지. 하지만 반항적인 노예에게 새기는 경우도 존재했어.

 

자, 너는 어느 쪽이 되고 싶니? 어느새 입이라도 맞출 듯 가까워진 얼굴은 조금도 다정하지 않았다. 강화인간들은 대답을 찾기 위해 눈을 굴리다가 거울과 눈이 마주쳤다. 바늘이 지나간 자신의 몸이 비쳤다. 그가 막 완성한 문신에서는 화상 같은 고통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황홀할 정도의 아름다움에 신자들은 기꺼이 그 고통을 쾌락이라 말했다.

누군가의 문신을 탄생시키고, 도구를 정리하던 차에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 현재 안타리우스 내의 최고 권위자. 옥사나님이라 불리우는 자. 그 치는 막 리오넬라가 집어넣은 의자를 툭 밀쳐냈다. 거슬리게 튀어나왔다.

 

"이런 곳에서 잘도 영업을 하는군."

"영입이지. 차라도 한 잔 할래? 탄야."

 

그러나 손에 돌아온 건 맹물이었다. 그 역시 같은 것을 손에 쥔 채 웃어 보였다. 리오넬라는 탄야가 자신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차를 줘봤자 쏟아버릴 테니 차가운 물로 대접하겠다는 지극히 단순한 판단. 탄야는 그런 장난스러운 대우에 감정이 상할 법한데도, 말없이 잔을 쥐었다. 두 사람은 마치 아주 뜨거운 차처럼, 아주 조금씩 잔 안의 물을 삼켰다.

 

"3일도 못 버틸 거라 생각했는데."

"만약에 버티지 못했다면 어떻게 했을 거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냈으려나?"

"아니. 능력이 아까운 건 사실이라 입맛에 맞게 개조하고 목줄을 채워놨겠지."

 

섬뜩한 소리에도 그는 개의치 않았다. 즐거운 농담을 되새김질해보는 얼굴이었다. 물 한 모금을 머금어 마시는 내내 입꼬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능력이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야."

 

가벼운 콧노래를 부르는 그를, 탄야는 바라보았다. 리오넬라는 정말이지 괴짜였다. 그렇게 여기는 생각의 횟수는 벌써 서너번 정도가 되어갔다. 그럴 때마다 생생하게 둘의 첫만남이 떠올랐다.

 

한 번에 여러 건의 의뢰를 처리하니, 태양이 지고 있었다. 지평선 중턱에 잠긴 해를 바라보던 탄야는 입가에 뭉친 독을 닦았다. 혼자만의 생각에 취하기 좋은 때였다. 그 때, 발 밑에 무언가가 던져진 소리가 났다. 살구빛 덩어리는 눈코입이 그려져 있어 인간의 얼굴처럼 보였다.

돼지 가죽이야. 덩어리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져 있던 리오넬라가 말했다. 그는 손을 뻗어 허공을 연주했다. 가죽 위의 얼굴이 눈을 뜨더니, 웃어대기 시작했다. 흙먼지를 일으킬 정도였다. 손짓 한 번에 때로는 울고 혓바닥을 내밀었다. 마지막으로 지휘를 마친 연주자처럼 주먹을 쥐었을 때는 좀 달랐다.

눈코입이 덜렁거리더니 사방으로 밀려갔다. 이미 죽은 것이겠지만, 정말 죽은 것처럼 가죽은 사방이 뒤틀린 채 늘어졌다.

 

리오넬라는 탄야가 가죽의 마지막을 감상하기 무섭게 말을 쏟아냈다. 약간이나마 움직이지도, 다가오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나치게 빠르고 끊이지 않는 말소리는 마치 달려들어 휘두르는 손에 맞는 느낌이었다.

 

"난 대상에게 문신을 새겨 상대를 감시하고, 조종할 수 있어. 물리적으로도. 내가 새긴 문신은 절대 지워지지 않아. 한 달 전, 어떤 사람이 흐려진 문신을 손봐달라고 찾아왔어. 가게를 떠난 그를 직후에 사용했지. 내 작품들이 어디에서, 어떤지 궁금했거든. 문신을 통해 그의 주변을 둘러봤지. 그러다 너를 보았어."

이 부분에서 리오넬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 숨이 찬 게 아니라 벅차오른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당신을 따르고 싶어. 날 어디에 써도 좋으니, 당신은 데려가기만 해. 단, 조건이 있어. 어떤 것이냐면...“

 

완전히 져가는 태양빛 아래, 얼굴과 머리칼은 어둡고도 밝았다. 그 말을 따라 읽던 탄야는 잠시간 멈춰 섰다.

 

탄야가 현실로 돌아온 건 리오넬라의 말이었다.

"약속은 계속 기억하고 있는 거지? 우리가 만난 첫날의 조건."

다 비운 잔을 탁자에 내려놓는 소음. 리오넬라는 작은 행동에서 큰 것을 끌어내는 사람이었다. 기분 나쁜 마찰음조차도. 나비의 날갯짓이 연상되는 속눈썹의 깜빡거림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당신에게 문신을 새기고 싶다고 했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형태로. 자고 있을 때 전신 문신을 작업할 수도 있다고 말했지. 어쨌든, 당신은 조건을 받아들였어. 그리고 날 이 이상한 곳으로 데려왔어. 당신은 알아갈수록 재밌는 사람이야. 문신으로 할 만큼 구경했는데도 말이지. 문신 형태는 천천히 정할래. 당신을 완벽하게 안 다음에야 시작할 거니까."

"..왜 그런 조건을 내걸었지?"

거의 달라지지 않은 탄야의 잔 속 물이 넘쳤다. 리오넬라가 탄야의 위로 올라가 있었다. 옷이 젖어가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리오넬라는 탄야를 응시했다. 수천 개의 바늘처럼 시선이 탄야를 관통했다.

 

"이런저런 변명과 상징을 붙여봐도, 나에게 내 능력은 예술이야. 탄야, 혹시 어떤 비난을 듣더라도 손안에 넣어보고픈 대상을 꿈꿔본 적 있어? 나에겐 당신이 그 대상이야. 그러니 가장 완벽한 시간에, 완전하게 새길 거야. 내 예술이 당신을 위해 태어난 것처럼. 무언가를 새기는 사람 또한 새겨지는 사람 못지않게 도박하는 법이거든. 가공하고 싶은 원석은, 도중에 내 손이 깎여나가도 완성해야 해."

행복할 수 없는 사랑에 몸을 던지는 연인들. 온몸이 으스러져도 물살을 거스르는 연어들. 그리고 인륜따위 잊어버린 채 살아있는 것을 집어삼키는 사냥꾼들. 일생일대의 경악스러운 고백에도 탄야는 놀라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헌터 탄야였기에 이해하고 만 것이다. 저주스러울 만큼 관능적인 욕망에 대해. 탄야 역시 비난을 피할 수 없는 단체의 수장이었고, 그런 누군가와 수도 없이 손을 잡았으며,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은 시련을 존재들에게 주었다. 그랬기에 리오넬라의 야망을 이해했다. 그렇다고 한들 두 사람의 관계가 로맨틱해질 가능성은 미약했지만 지금 당장, 두 사람은 서로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열 띈 연설 이후로 리오넬라는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침묵에 가까운 분위기 속에 몸을 돌리더니 작은 속삭임이 전해졌다.

 

"리오넬라라고 불리는 건 익숙지 않아."

"무엇을 원하지?"

"어릴 적부터 리리라고 불렸어. 그게 내 수준에 어울리는 호칭인 것 같아."

"그래, 리리."

환하게 웃는 그는 다시금 순진해 보였다. 다분히 리리다운 웃음이었다.

@Julyand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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