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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무스 홀든 X 소피아 블랙웰

다이무스, 할 말이 있어요. 지금 당장. 이거요? 걱정 말아요. 내 피는 아니니까. 잠깐 앉아서 진정하라고요? 지금 그럴 기분이 아니에요.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젠장! 다이무스, 제발, 제발 내 말을 들으라고요!

 

…나는, 지난 2개월 동안 안타리우스에 정보를 흘리고 있었어요.

 

네, ‘그’ 안타리우스요. 아니요, 실수로 그런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안타리우스가 기습을 피하고 헬리오스나 지하연합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게끔 협조하고 있었다고요.

 

왜 그랬냐고요? 하, 하하… 글쎄요? 어디서부터 말을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라고요? 당신은… 당신은 늘 그랬죠. 침착하고, 인내심이 강해서 내가 흥분할 때마다 내가 가라앉기를 기다려줬죠. 나한테는 이제 과분해요, 그런 거.

 

…석 달 전이었어요. 내가 정신없이 집에 들어와서 문을 잠군 날, 생각나요? 그 날 아버지를 뵈러 갔었어요. 근데 글쎄, 아버지께서 ‘소피아’를 만나셨대요. 그래요, 소피아. 내 이름이긴 하지만 당신도 아시잖아요. 아버지는 절대로 저를 소피아라고 부르지 않으신다는 거. 왜냐하면, 당신께서 소피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15년 전에 돌아가신 내 어머니뿐이니까요. 그런데도 ‘소피아’를 ‘다시’ 만났다고 하셨어요. 그것도 ‘기도’의 힘 덕분에.

 

딱 듣기에도 수상하죠? 나도 그렇게 말씀 드렸어요. 그랬더니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아무튼, 그 분 답지 않았어요. 원래 고집이 세신 분이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일은 없었는데… 안타리우스가 어떤 방법을 썼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정상적인 판단력을 완전히 앗아갔어요. 죽은 사람이,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 돌아오겠어요……. 그것도 15년이나 전에 죽었는데. 나는 결국, 왜 엄마도 알아보지 못하냐고 윽박지르는 아버지와 자신을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던 그 여자를 두고 도망쳤죠.

 

…무서웠어요.

 

그 여자가 대체 누군지는 나도 몰라요. 하지만 안타리우스는 클론까지 만드는 기술력을 가졌잖아요. 사람을 세뇌시키는 건 그것보다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약물을 사용하든, 고문을 가하든, 마약을 이용하든. 게다가 아주 편리하게도 ‘부활’을 하면 지난 기억을 잃어버린다는 설정을 덧씌웠더군요.

 

그들은 아버지에게 기도를 하면 ‘어머니’의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다고 했어요. 그렇게 아버지는, 기도원이라고 부르는 곳에 가서 돈과 시간과 노동력을 그 사람들에게 바쳤어요. 잠도 자지 않고, 식사도 거르시면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끊임없이 글귀를 필사하시더군요. 유일하게 펜을 내려놓으시는 순간은 찢어진 손가락에 반창고를 붙일 때뿐이었어요. 신성한 글귀에 혈흔이 묻으면 안 된다나 뭐라나. 그 상황에서 나는 뭘 어떻게 했겠어요? 당연히… 당연히 아버지를 빼오기 위해서라도 안타리우스의 내부로 들어가야 했죠.

…왜 당신에게 얘기하지 않았냐고요? 물론 이야기할 기회는 있었어요. 아버지에게서 도망친 그 날이나, 기도원에 들어가기 전이나…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그야, 당신이라면… 이 질척거리는 수렁에 빠지더라도 내 손을 놓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리고 나는 그걸 용납할 수 없었어요. 지금 와서는 헛된 희망이었던 거 같지만, 나는… 나는 당신의 약점이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다이무스 홀든의 발목을 잡고 싶지 않다고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어요. 나는 기도로 사람이 부활하는 걸 믿지는 않았고 대외적으로 얼굴이 그리 알려져 있는 사람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안타리우스는 이미 내가 누군지 알고 있었어요. 내가 ‘세례’를 받자 아버지를 ‘특별 신도’로 격상시켰더라고요. 이름만 특별하지 사실상 인질이나 다름없었어요. 가끔 아버지를 뵈면 그 분은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며 불현 듯 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불안 증세를 보였어요. 어쩔 때에는 나한테 욕설을 퍼부으면서 자해를 하기도 했어요. 아버지의 정신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제야 깨달았어요. 이게 처음부터 그들의 계획이었던 거예요. 내가 당신의 아내라서, 아버지는 그런 나의 아버지라서… 그래서 철저한 계획을 통해 접근한 거죠. 그리고 바보 같은 나는 그들이 원하는 행동을 그대로 보여줬고요.

 

그 사람들은 고통을 통해서 신을 영접한다는 교리가 있다는 거 알았어요? 나는, 알고 싶지 않았어요……. 그들은 당연하게도, 내게 정보를 요구했어요. 헬리오스의 에이스, 다이무스 홀든이 다루는 정보라면 일반적인 정보상은 구할 수 없는 기밀 사항일게 뻔하니까요. 처음에는 물론 거절했어요. 나는 아버지를 빼오려고 거기에 들어갔지 그 사람들에게 협조하려고 간 게 아니었으니까요. 어떻게든 당신은 이 일에서 빼놓고 싶었고요. 그랬더니 다음에 본 아버지는 온 몸에 흉터를 달고 나타나셨어요. 그리고 아직 채 핏방울이 가시지 않은 상흔을 숨기기 위해 애쓰시면서 나한테 말씀하셨어요. ‘고행을 통해 기도의 단계를 드높였다’고.

 

꼬박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없이 안타리우스의 그, 빌어먹을 교리를 수도 없이 낭독하다가 채찍질을 당하는 게 ‘기도’라니. 웃기는 소리. 그건 명백한 협박이었어요. ‘네 애비의 목숨은 우리가 쥐고 있으니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었죠. 그만 두고 싶은 생각은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했어요. 실제로 그만 둘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구하고 싶어서, 멈추지 않았어요.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이기적이라고 경멸해도 어쩔 수 없겠죠.

 

지난번에 안타리우스가 갑자기 연구소를 정리하는 바람에 단서를 찾기 힘들었던 거 기억나요? 그거 내가 미리 말해줘서 그래요. 당신 책상에 있던 그 보고서를 읽었거든요. 나는 당신의 서재에 노크하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그래서 당신 몰래 암기해서 전해줬어요. 외우는 편이 흔적도 안 남고, 나한테는 시간이 많았거든요. 그 다음번 작전에서도 그랬고… 헬리오스가 반대로 급습당할 뻔했던 사건, 그것도 나예요.

 

근데 이제는 내가 그 사람들에게 필요 없어졌나봐요. 아버지를 보내줬어요. 그래서 오늘 뵈러 갔죠. 잔뜩 지친 상태로 돌아온 아버지는 세뇌와 마약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어느 때보다 맑은 정신이었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순간이 너무 기뻤어요. 당신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는 희망을 감히 품어버리기도 했어요. 하지만 안타리우스는 마지막까지 잔인해요. 그 가혹한 현실을 굳이 깨닫게 만들었어요. 아버지는 그제야 외면하고 있던 실상을 직시하셨어요. 죽은 아내는 돌아오지 않고, 당신께서는 안타리우스에 이용당했고, 딸은 사랑하는 남편을 배신해야했다는, 그 역겨운 진실을요. 괴로워하셨어요 아버지는. 그래서… 그래서 그 원인을 제거하셨죠. 자기 아내를 하나도 닮지 않은 낯선 여자를 쏴죽이고, 아버지는 말씀하셨어요. ‘미안하다, 이비’ 그리고 그 말을 남기시고 가슴에…….

 

그래서 옷에 피가 묻은 거예요. 뭉클뭉클 새어나오는 피를 조금이라도 막아보려고 해서. 결국 나는 아버지를 위해 당신을 저버렸는데, 남은 건 아무것도 없네요. 아, 남은 게 두 가지 있긴 하네요. 우리의 너덜너덜해진 신뢰관계와 내가 당신의 약점이라는 사실. 정말이지, 그런 건 죽기보다 싫었는데.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내가 그들에게 정보를 준만큼, 그쪽의 정보도 어느 정도 긁어모았다는 점이에요. 내 서재의 책상 서랍 안에 차곡차곡 정리해놨답니다. 내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비능력자에, 아버지 때문에 제 발로 들어온 멍청한 여자가 그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을 거예요. 안 그래요? 아니요, 제발. 다이무스… 날 달래려고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지금 울 자격도 없는 사람이니까요. 그리고 당신에게서 위로를 받고 싶지 않아요. 단죄 받아야 마땅한 사람인걸요. 미안해요. 처음부터 얘기했어야했는데……. 나를 용서하지 말아요.

 

우선 총을 내려놓으라고요? 하하, 싫은걸요? 확인해보니까 아버지께서 쓰시고 나서 탄환이 딱 하나, 남았더라고요. 완벽해요. 정말, 끔찍할 정도로 완벽해요. 지금까지는 일이 계속 꼬였지만, 나도 아버지처럼 이 모든 일의 원흉을 제거할 수 있어요.

 

나를 버려요, 다이무스.

 

당신은 강한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걸로 무너지지 않을 거예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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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bably_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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